절골에서 하늘재까지
27일째 일정은 절골 - 조령 문경새재 - 마폐봉 - 부봉 - 월항삼봉 - 하늘재까지이다.
윤형삼 형님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바쁜지 다음날 바로 길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둔했다.
뭔가에 쫓기듯 사는 인생... 산에서도 반복을 하다니...
몸이 정상이 아닌 것을 외면하고 절골에서 국도를 따라 문경 새재까지 올랐다.
지도를 보니 절골 - 새터 - 원풍저수지 방향으로 짧은 거리를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원풍저수지
원풍저수지를 지나 새재로 오르는 길에 잘 지어진 화장실이 있다.
말이 화장실이지 시설이 아주 좋다. 물도 있겠다 해서 아침밥을 먹었다.
조령
한참을 걸어서 새재에 당도했다.
말로만 듣던 문경 새재...
문경 새재 근처를 둘러보았다.
관광지 티나 나는데 크게 볼 건 없다. ㅎㅎ
문경 새재 안 말라버린 샘터
지나가는 분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니 살이 엄청 빠졌다.
문경 새재 안에 먹거리를 파는 곳이 있다.
아마도 여기서 막걸리 한잔하지 않았나 싶다.
마폐봉
동암문
문경 새재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고
마폐봉을 거쳐 동암문에 도착했다.
한무리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다.
나도 그 틈에 끼여 밥을 먹었다.
내 행색을 보더니 궁금한지 물어본다.
자연스레 어울려 김치도 얻어먹었다.
이분들은 백두대간 구간종주 산악회다.
부봉삼거리
산악회와 뒤섞여 산행을 했다.
덕분에 내 사진도 많이 찍었다.
가는 곳마다 나무며 바위며 아름답다.
평천재
산악회 맨 끝에서 산행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오자가 생긴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이다.
탄항산
산행 대장이 이 분을 좀 챙기듯하더니 먼저 가버린다.
황당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어르신과 보폭을 맞췄다.
힘들다.
어르신이 고마운지 쵸코바를 주신다.
같이 나눠먹고 계속 걸었다.
어르신 보폭에 맞게 가려니 더 힘들다.
얼마 가지 않아 쉬어야 하고 쉬니 더 처지고...
참 낭패다.
겨우 하늘재에 당도했다.
어르신을 하늘재에서 배웅했다.
너무 속도만 내는 산악회... 좀 생각해봐야 한다.
하늘재 산장
드디어 하늘재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지기 말을 들으니 백두대간의 중간이라 한다.
맞는지 틀린지 잘 모르겠다.
하늘재 산장은 평소에는 운영하지 않다가 산행이 많은 휴일에 운영한다고 한다.
오늘 날짜를 보니 토요일이다.
산장지기 어르신과 마을 주민과 어울려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아니 많이 마셨다.
산장지기 어르신과 마을 주민과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마셨다.
저녁 잠자리를 하늘재 마당에서 자면 된다 한다.
고맙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많다.
그냥 하늘재 밑에 있는 관음사 절에 놀러 왔다가 하늘재까지 구경 온 사람들도 있고
백두대간 구간 종주로 다녀가는 사람도 있다.
다들 산장에 들러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하늘재 마당에 타프를 쳤다.
마당 옆 풀밭에 뱀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술 취기 때문인지 깊게 잠들지 못했다.
아마 1인용 비박 텐트를 쳤으면 편안히 잘 잤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밤이 백두대간 종주 산행 일기의 마지막이 될지 그때는 몰랐다.
하늘재에서 하산
28일째 아침이 밝았다.
나의 백두대간 도전기는 여기서 끝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타프를 걷다가 갑자기 눈앞이 번쩍한다.
고질병인 허리에 담이 온 것이다.
나는 허리 통증이 자주 온다.
산행 중에 조심한다고 했는데 결국 담이 왔다.
어쩌면 다행인 줄 모른다. 만약 높은 산중에서 담이 왔으면... 정말 아찔하다.
어제 과음한 탓도 있겠지만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찬 바닥의 냉기를 그대로 받은 게 원인인 것 같다.
텐트를 가져갔어야 했는데...
하산 후에 지낸 민박집
조금 있으면 괜찮겠지 싶어서 몸을 조금씩 움직여 봤지만 허사다.
하는 수 없이 하늘재 밑 미륵사지 관광지로 하산했다.
하산을 하고 민박집을 잡고 이틀을 쉬었다.
변동이 없다.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겠다.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만 조심할 것을...
수안보
민박집에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한의원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수안보로 내려갔다. 여관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윤형삼 형님이 또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한다.
윤형삼 형님과 저녁을 먹었다.
형님은 등반을 멈추고 다시 도전하라고 한다.
복잡한 감정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형님을 보내드리고 여관에서 이틀을 더 쉬었다.
미련이 남아서 일 테다.
며칠을 더 쉬었지만 차도가 없다.
일어서기는 하겠는데 배낭을 멜 수조차 없다.
친구 녀석이 내 근황이 궁금해 연락이 왔다.
허리에 담이 와서 수안보에서 며칠 쉰다고 하니 다짜고짜 욕을 해댄다.
내가 수안보로 갈 테니 종주를 접어라고 한다.
망설였다.
아... 여기서 끝인가...
아마 내 인생에서 백두대간 종주는 마지막일 될 테다.
다음날 친구가 수안보까지 왔다.
내 꼴을 보더니 혀를 찬다.
배낭을 압수당하다시피 해서 다시 창원으로 향했다.
창원으로 가는 길에 저녁노을을 보니 눈물 나게 아름답다.
백두대간 등반을 마치고
전에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에 도전 중이다.
3년이 지났다.
하는 일의 특성상 일요일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산이 멀어졌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본다.
일도 중요하지만 너무 급하게 달려가지 않는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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