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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해 금산 산행기 - 오메! 하메 봄이 왔구만

남해 금산 산행기 - 오메! 하메 봄이 왔구만


금산, 681M 경남 남해

글쓴이 - 백두한라산악회 박광수




땅이 꿈틀거린다. 얼었던 땅에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저기에서 봄이 오고 이 곳에서도 봄이 흐드러지게 달려온다. 흙내음의 풋풋함과 자연의 순결한 미가 속살거린다. 겨우내 품었던 잠자던 생명을 깨운다. 지난 겨울 긴긴밤이 그리움을 뒤로하고 세상을 박차고 나와 새 생명의 고귀한 잉태를 위하여 망울망울 봄이 터져 나온다. 남녘의 들녘엔 푸르른 생명의 기운이 새롯이 피어난다.


봄이 오는 소리다. 아니 봄이 달려온다. 스치는 바람은 스산하지만 자연이 주는 순결한 기운이 무척이나 반갑고 살갑다. 봄을 맞이하자고 목적지 없이 떠났는데 봄이 반갑게 마중 나온 곳이 남해의 금산이었다.



도로변의 매화는 봄을 찬양하고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동백은 언제 피고 졌는지 죄 다 송이째 떨어져 색이 바뀌고 잎사귀 안데 간지러운 바람에 살짝 떨고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는 피어나지 않고 터질까 말까 수줍은 듯 몽우리만 보여주고 잇는 모습이 봄처녀 같다.

봄볕은 강가의 버들개지에게 함초로움과 앙증맞음을 주고 파릇이 돋아 나는 보리는 들판을 색칠한다.



봄을 캐는 아낙네의 손길이 여유 있어 보인다. 쑥, 냉이 따 가족들의 저녁 밥상에 봄의 향기로 진수성찬 차리고 덤으로 꼬막과

굴로 입맛을 돋구게 하겠지.


남해대교 밑으로 고깃배들의 힘찬 고동소리가 남해에 왔음을 알린다. 쪽빛 바다엔 봄이 한참이나 올라 있다. 노량 포구 갯마을엔 아낙네의 봄나물과 고기들의 두드득거림에 봄이 토실토실 여물어 간다.


금산 - 이름 그대로 비단 금자에 뫼 산으로 비단으로 옷을 입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이다.



금산은 신라의 원효대사가 보광사라는 절을 지어 보광산이라 불리어지다가 지금의 금산으로 부르게 된 배경은 태조 이성계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성계는 이 산에 와 백일기도를 하면서 나를 왕으로 되게 해주면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입혀주겠다고 보광산과 약속을 하였다. 이에 보광산은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주고 이성계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이 산을 어떻게 다 비단으로 입혀주랴 그리고 비단은 금방 때가 묻는데... 고심하다가 그냥 말로 이 산을 비단 금 자에 뫼 산으로 하여 금산이라 부르라 하여 오늘날 금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금산에 이성계가 기도했던 이태조 기단이 남아 있다. 또한 진시왕이 불로장생하고픈 옥심으로 서불과 500명의 동남 동녀에게 멀리 남해의 삼신산에 있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하는데 서불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상주의 어느 바위에 서불과차(서불이 다녀감)라는 글을 남겼다. 남해 석각으로 알려진 이 서화는 아직 판독을 못하고 있다.





남해 금산 산행기


이성계의 야망과 진시왕의 불로초 이야기에서 남해의 금산이 삼신산의 하나로 신령스러운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쪽빛 바다에서 실려오는 바람이 겨울, 봄바람을 번갈아 전해준다. 바다는 얌전히 흐르고 새들은 먹이 찾기에 바쁘다.

땀이 송글해지는 때 약수터에 도착하였다. 물 한 모금 입안 가득 퍼져 뱃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봄의 기를 불어 넣어준다.



금산을 오르면 볼거리와 전망이 일품인데 특히 전설 따라 삼처니 같은 곳이 무척이나 많다. 재미있는 산행과 좋은 추억거리를 가득 안아 올 수 있다. 금산의 바위, 모퉁이마다 이름을 다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산 38경이라는 명소가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제 1경은 금산 정상에 있는 망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남쪽에 있는 봉수대가 있다.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뜨는 모습이 눈 시리도록 장관이다.



제3경은 대장봉으로 보리암 뒤에 있는 바위로 용과 범이 구슬을 희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5경은 삼층석탑으로 신라 신문왕 3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보리암과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부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탑이다.


제9경은 삼불암으로 이태조기단 뒤편 큰 암벽 위에 있는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의 세 개의 바위로 두 개는 서 있고 하나는 누워있는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자 두개는 섰으나 하나는 서지 않았다 한다. 나머지 한 개마저 일어나면 조선의 왕뿐만 아니라 중국의 천자까지 차지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제15경은 쌍홍문으로 조금은 으시시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도 재밌거니와 오늘날에 와서는 밑에서 돌을 던져 구멍 한에 돌이 들어가면 결혼을 할 수 있다하여 많은 이들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두 개의 큰 구멍과 돼지 콧구멍 같은 작은 구멍 두 개가 있는 바위이다.


제27경은 상사바위로 상사병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기쁨과 달리 이 바위는 잔잔한 슬픔과 금산의 아름다움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데 조선 숙종 때 전남 여수 돌산도에 살던 한 사내가 남해로 이사를 왔다. 그 사내는 어느 부유한 농가에 살게 되었는데 그 안주인의 자태와 미모에 반해 그 여인을 사모하게 되는데 안주인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 상사병에 걸리고 만다. 상사병에 걸려 신음하다 죽음 직전에 이르렀는데 이를 눈치 챈 여인이 남편의 눈을 피해 죽어 가는 남자를 살렸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바위다.




제34경은 진시왕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는 보소암이고 제35경은 앞에 설명했던 남해 상주리의 석각(서불과차)이다.


제37경은 금산의 밤 풍경으로 남극성을 보는 것인데 이 별을 보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예로부터 찾는이가 많다고 한다.

이 빡에도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금산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알려진 보리암에 발길을 멈추었다. 수많은 세속인들이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 지극 정성으로 부처 앞에 합장을 하며 비나이다 하고 있다. 두 손 모아 합장하니 세상시름 모두 떠나간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남해 바다로 퍼져나가 참선하듯 내려앉아 부처처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깨운다. 정상인 망대에 올라선다. 망대에 돌 하나 올려 소원 하나 빌어보고 품었던 마음 떠나보낸다.


멀리 삼천포의 와룡산, 금산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듯 시샘봉이 아득히 보이고 서편의 팔영산은 몇 개의 봉우리가 남해 바다를 지키고 서있으며 광양의 백운산은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봄날 산행이 지고 있다. 그러나 봄날은 산행이 지는 사이 더욱 푸르게 솟아오른다.



금산 길잡이


대중교통 이용할 때 남해로 가서 금산가는 차를 타야 한다.

먹거리는 남해 3자라고 하는 유자, 치자, 비자가 유명하며 마늘도 이름이 나있ㄴㄴ데 남해의 밭 전체가 마늘밭이다. 또 물메기찜이 맛이 좋다.

볼거리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곳곳에 있으며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유배생활을 했던 노도가 있으며 가천마을엔 남녀의 모습을 상징한 미륵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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