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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룡산 산행기 - 부처님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었습니다.

계룡산 산행기 - 부처님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었습니다.


계룡산, 845M 

글쓴이 : 백두한라산악회 박광수





 어릴 적 시장 통에서 만나는 돌팔이 약장수의 입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도 닦는 산 계룡산.


소문이 거짓이 아닌가 계룡산은 전국의 난다긴다하는 도인들이 찾아들고 있으며 무속인들이 수도 생활을 하는 곳으로 한 번은 꼭 들러야만 하는 순례지역에 들어가 있다. 그 만큼 계량산은 풍수학적으로 유명하며 남한 땅에서 가장 좋은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계룡산

 이 산은 차령산맥이 남서쪽으로 이어나가면서 호성평야 한 가운데 솟아있다. 신라 때부터 신성시 여겨져 나라의 다섯 산중의 하나로 정하고 묘향산에 성악단 지리산에 하악단, 계룡산에 중악단을 세워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중악단이 세워진 것을 보면 이성계 즉위 3년 후 무학대사가 이 산에 머물고 있을 때 할머니 신이 나타나 이성계에게 전하며 중악 단을 만들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의 수도를 정하는 시점에 무학대사는 한양은 500년이요 계룡산은 천년이므로 태조에게 수도를 계룡산으로 하라고 권하였다. 산봉우리 모양이 수탉의 벼슬과 같아 부를 상징한다고 믿었고 산의 풍수학으로 볼 때 산태극 수태극이 어우러져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형상이라고 한다.

 

 정감록에서 말하는 후천 개벽의 문이 열리는 곳이 바로 이곳 계룡산이었다. 이 후 정감록과 관계없는 다른 신흥 종교들 에 의해 다시 한번 비슷한 주장들이 있었고 천년이 마감되는 오늘날까지도 자신들의 종교만 믿으면 고통받는 날은 가고 살맛나는 세상이 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이 산이 제일 가는 명산으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갓 쓰고 도포입고 움막생활과 생식을 하며 수도하는 자들이 드나든다.


 또한 이 산은 국방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도 계룡대에는 육, , 공군 본부가 있다)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릴 때 계백 장관이 군사 5천명을 이끌고 싸우지만 나당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때 의자왕이 충신 성풍의 상소를 받아늘였다면 패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충은 상소문에서 산의 지형과 이점을 잘 이용하여 지금의 금강과 판현에 군사를 배치하자고 상소하였는데 오히려 이런 충신을 감옥에 처넣었으니‥‥



 

 근세에는 1894년 동학이 일어나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이 산기슭인 공주의 우금치에서 패배했던 아픈 기억도 안고 있다.

동학사에서 참배를 끝내고 삼불봉을 향해 길을 잡았다. 황량한 겨울 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차가운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든다. 나뭇잎이 쌓이고 쌓여 발길대로 길을 만들어 놓아 걷는 즐거움을 흠뻑 느끼게 만들어 주는 길이 열린다. 바짝 엎드려 나는 새, 매몰차게 부는 바람, 무언가를 토해낼 것만 같든 하늘. 이러한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도 하지만 오늘 산행은 조용하고 마음에 담을 수 있근 산행이 될 것 같다.

 

 가을 날 화려하게 옷을 입었던 나무틀이 이제는 완전히 옷을 곡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보기 좋다.

닫혀 있던 가슴이 열린다. 열린 가슴을 통해 계룡산의 찬 기운을 받아들인다. 동학사에서 남매탑까지 30분 정도 거리인데 느림보 걸음으로 130분이나 걸렸다. 오름길이 다소 숨이 차지만 그냥 천천히 걷기로 했다. 등산객이 많이 없는 것이 산을 걷기에 더욱 행복하게 한다.

 

 남매탑이라 부르는 곳에 발길을 멈추었다. 오빠탑은 7, 동생탑은 5층으로 되어 있는데 탑 둘레에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듯 쇠줄이 보초를 서고 있다. 얼마나 손을 댔기에 어떤 곳은 반질반질하게 되어 있다. 이 오누이 탑은 삼불봉 봉우리를 벗삼아 있는데 경치도 그만이지만 천년 전에 있었던 남매의 지순한 사랑이 담겨있다.

 



계룡산 산행기


 백제의 왕궁이 나당 연합군에 함락되면서 왕족 한사람이 계룡산 삼불봉 밑에 굴을 파고 숨어 지내면서 수도를 하게 된다. 어느 날 사람 뼈가 목에 결린 호랑이가 찾아와 애걸하기에 목에 걸린 뼈를 뽑아주었더니 호랑이는 감사한 마음에 아름다운 여인을 업고 왔다. 그리하여 그 둘은 같이 살게 되는데 눈이 쌓인 겨울 날 깊은 산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단둘이 지내게 된 왕족은 여인의 한없는 유혹에 발버둥치며 수도인으로서 갈등에 싸인다. 그러나 오로지 불도로써 극복하고 한 겨울을 넘기게 된다. 봄이 되고 눈이 녹아 길이 열리자 왕족은 여인을 남자로 변장케하고 그너의 집으로 찾아갔다. 여인은 상주지방의 김화공의 딸이었다. 여인의 부모는 몇 달간 남자와 한집에서 지낸 처녀가 어떻게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 수 있겠느냐면서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니 혼인해 줄 것을 왕족에게 간청한다. 그러나 왕족은 수도자임을 밝히고 거절한다. 그러자 여인의 아버지는 왕족이 딸을 농락하였다고 거짓 죄명을 씌어 관가에 고소한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왕족의 말이 사실임이 알려지고 혼인을 안 해도 아무 죄 없다는 판결을 받고 풀려난다.

 

 처녀의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낸다. 그러나 여인은 첫날밤 신방도 차리기 전에 그 남자를 찾아 나선다. 왕족을 찾은 여인은 자신을 동생으로 삼아 달라고 청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서로 남남이 남매가 되었고 이 후 남매는 한 평생 도를 같이 닦았고 죽은 후 이 남매의 아름다움을 기리기위해 지금의 탑에 남매의 사리를 넣고 보관하게 되었고, 이후 사랑들은 이 탑을 오누이 탑, 남매탐이라 불렀다. 수도하는 왕족이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였을까 사랑을 따르자니 부처님 노하시고, 부처님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었습니다. 사랑은 울었지만 이 남매의 지순한 사랑은 이 산을 찾는 이에게 가슴속을 찡하게 울리고 있다.



 

 삼불봉으로 오르는 계단길에 들어서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리가 후틀거려온다. 이 봉우리는 겨울에 가장 아름답다. 눈 쌓인 봉우리를 밑에 서보고 있노라면 마치 큰 학이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성스러워 보인다.

 

 이 철계단길을 오르면 계룡산 전체를 볼 수가 있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이길을 버리고 바로 금잔디 고개로 하산을 하지만 (숨어 있어 잘 안보여서 그렇겠지만)피곤한 산행을 하는 사람은 이곳 삼불봉을 거치고 금잔디 고개로 하산을 한다.


겨울바람이 가져주는 고통에 철계단을 오른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 바람을 잡을 수 있다면 저 곳을 쉽게 올라 갈 수 있는데 도무지 얌전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새들도 이 바람이 힘이 부치는지 아예 둥지를 틀고 숨죽이며 몸을 가누고 있다.

식식거리면 입김을 몇 번이나 없앴을까 삼불봉 정상에 닿았다. 뽀드득 발자국 소리의 짜릿함 아래 눈이 쌓여 있다. 누군가 먼저 갔는지 여러 개의 발자국 흔적이 뚜렷하지만 기분이 째진다. 드문드문 얼굴을 내띠는 햇살에 눈은 강럴한 빛을 만든다. 삼불봉의 겨울 맛을 사진기 담아두고 금잔디 고개로 하산길을 잡았다. 이름만큼 고갯길도 제법 이쁘다. 재 또는 령이라고 부르는 고갯길은 수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헤어짐과 만남 길 떠나는 이들 보이지 알을 때까지 손 흔드는 여인, 이제 나올까 하여 가슴 졸이며 고갯길에서 님을 기다리는 자들,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 원한이 망부석이 되어 굳어버린 바위들 고갯길은 우리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는 곳으로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고 또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갑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이곳까지 진종일 놀고 가기엔 좋아 어린이도 쉽게 오른다. 나도 또한 이 고개에서 쉬어본다.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차 살짝 비추는 햇살에 온몸이 녹는다. 산에서 마시는 차는 언제나 맛이 있고 진한 향을 느낄수가 있어 좋다. 지치고 힘이 들 땐 보약보다 값진 것이 따뜻한 차 한잔이다. 차의 고마움에 피로를 풀고 갑사로 향하였다. 갑사 가는 길 수많은 문학지망생들의 빠지지 않는 문학기행지로 이곳을 찾는다


 갑사와 산세, 계곡 풍경들이 어우러져 상상력을 발동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므로 쾌나 매력이 있는 길이다. 이 길은 무엇보다 풍경 자체가 조용하고 적막한 것이 사람이 함께 뭔가를 하기에는 다소 침침한 길이지만 생각을 하고 무언가클 정리하려는 사람 등 머리 식히기에 좋아 이 길을 찾는다. 동쪽 동학사는 관광객이 발길이 채인다면, 이곳 서쪽 갑사 길은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전쟁과 평화 같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이 곳의 산세는 온순하다. 양 옆 작은 계곡엔 높다란 소나무가 하늘을 막고 물은 조용히 흐른다. 그리고 오래된 천년고찰 갑사가 소담스레 앉아 있다. 이 절 집에는 서산, 사명 기호대사의 영전이 모셔져 있고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백제 420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그간 세월의 무게가 눅눅히 녹아 있어 유서 깊은 절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동학사의 절엔 고려말 3인의 충신이 모셔져 있다


 산사에 어둠이 밀려온다. 어둠은 비를 가지고 온다. 아침에 잔뜩 찌루렸던 하늘이 기어이 비를 토해 낸다. 비가 내려 더욱 소담스러운 절 집이 된다. 청승맞게 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신이 처연해진다.


 조금 내려가면 주차장인데 왜 이렇게 가기가 싫은 걸까 " 곧 멎을 비가 아닌 것 같은데 하룬밤을 묶고 가든지 아니면 좀 더 있다가 가라"고 스님께서 말하신다.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묶고 깊은데 집이 창원이라 가야겠습니다". 라고 아쉬움을 남긴 채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이 비는 창원까지 따라와 밤새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다.



 

계룡산 길잡이

대전 시외버스나 역 앞에서 동학사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닌다.(당일가능)볼거리는 1박을 정하고 간다면 공주, 부여지방에서 백제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며 먹거리는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음식값이 비싼 것이다) 삼불봉으로 등산 시는 아이젠이 필히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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